게임 개발자가 바라본 문명6의 시스템 설계 철학
도입
게임 개발자로서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 게임은 어떻게 이런 재미를 만들어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문명6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로, 수백 시간을 플레이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개발자 관점에서 문명6가 어떤 시스템 설계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 게임에 매료되는지를 분석해보려고 한다.
아직 1500시간 밖에 못한 문린이다..!
개인적으로 문명6에서 느끼는 재미 요소들
먼저 내가 문명6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는지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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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시작: 스타트 위치가 게임 전체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좋은 스타트가 나오면 느끼는 희열감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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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몰입감: 각 문명의 배경이 실제 역사와 연결되어 있어 몰입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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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우위의 쾌감: 과학 기술을 앞서 나가, 시대 차이로 적을 압도할 때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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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건설의 퍼즐: 건물과 불가사의를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최대 효과를 얻는 전략적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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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승리의 성취감: 관광을 통해 다른 문명을 문화적으로 압도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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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패러독스: 실제로는 역사상 강대국이 아니었던 문명이 게임에서는 최고 문명이 되는 반전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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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판 새로운 재미: 매판 새로운 맵, 문명이 배치되고 이전과 다른 시대적 상황이 연출되어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음.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다..
문명6의 기초적인 게임 흐름
문명6는 턴제 4X 전략 게임(eXplore, eXpand, eXploit, eXterminate)으로, 플레이어는 하나의 문명을 이끌고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초기 탐험 단계 (고대 시대)
- 정착민으로 첫 도시 건설
- 주변 지역 탐험 및 자원 파악
- 기초 기술 연구 및 정부 정책 선택
확장 단계 (고전 ~ 중세 시대)
- 추가 도시 건설을 통한 영토 확장
- 다른 문명과의 첫 만남 및 외교 관계 구축
- 군사력 확충 및 방어/공격 준비
전문화 단계 (르네상스 ~ 산업 시대)
- 승리 조건에 따른 전략 결정 (과학, 문화, 종교, 정복, 외교)
- 불가사의 건설 및 위대한 인물 활용
- 국제 정치 및 무역 네트워크 구축
완성 단계 (현대 ~ 미래 시대)
- 선택한 승리 조건을 향한 최종 스퍼트
- 다른 문명과의 치열한 경쟁
- 게임 승리 또는 새로운 게임 시작
개발자 관점에서 본 문명6의 시스템 설계
1. 운과 전략의 절묘한 균형
설계 철학: 초기 운의 중요성과 전략적 깊이의 공존
문명6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운과 전략의 균형이다. 시작 위치는 완전한 운이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전략이다.
좋은 스타트 = 높은 잠재력
하지만 잠재력 실현 = 플레이어의 전략적 선택
이는 게임 설계에서 중요한 교훈을 준다. 완전한 공정성보다는 다양성과 재플레이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번 같은 시작 조건이라면 최적해가 고정되어 버리지만, 운의 요소가 있으면 매번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게 된다.

평지 언덕 스타트 + 주변 언덕 + 석재 + 말 + 사치 자원 + … -> 선덕에게 완벽한 스타트다.(출처: arstechnica)
2. 테마와 메커니즘의 완벽한 일치
설계 철학: 역사적 맥락이 게임 메커니즘을 정당화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이집트의 스핑크스, 일본의 사무라이 등은 단순한 스킨 변경이 아니다. 각각의 고유 유닛과 건물들이 실제 역사적 배경과 일치하는 게임플레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 오스만의 예니체리: 화약 유닛의 강력함 (실제 역사에서 화약 기술의 우위)
- 바빌론의 과학 보너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학/천문학 발달
- 네덜란드의 무역 보너스: 실제 해양 무역 강국의 역사
이는 테마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게임플레이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3. 복잡성의 우아한 관리
설계 철학: 복잡한 시스템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단순화
문명6는 엄청나게 복잡한 시스템들이 상호작용한다:
- 기술 트리와 문화 트리
- 자원 관리 (식량, 생산력, 과학, 문화, 신앙, 금)
- 도시 건설과 지형 보너스
- 외교와 국제 정치
- 군사 전략과 전투 시스템

턴 당 283.8의 어마어마한 생산력 (출처: Reddit)
하지만 플레이어는 이 복잡성에 압도되지 않는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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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복잡성: 게임 초기에는 간단한 선택만 주어지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점점 더 복잡한 옵션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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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피드백: 모든 선택에 대해 즉각적이고 명확한 결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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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선택: 모든 옵션이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 정답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4. 다층적 목표 시스템
설계 철학: 단기/중기/장기 목표의 유기적 연결
문명6의 목표 시스템은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 즉시 목표: 다음 턴에 할 일 (유닛 이동, 건물 건설)
- 단기 목표: 몇 턴 내 달성 (기술 연구, 불가사의 완성)
- 중기 목표: 한 시대 내 달성 (도시 확장, 군사 작전)
- 장기 목표: 게임 승리 (과학, 문화, 정복, 종교, 외교 승리)
이 구조는 플레이어가 항상 할 일이 있도록 만들어준다. 지루한 순간이 없고, 모든 행동이 더 큰 목표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문명6의 아쉬운 점
완벽해 보이는 문명6도 개발자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1. AI의 한계
- AI가 인간 플레이어만큼 전략적이지 못함
- 특히 외교에서 일관성 없는 행동을 보임
- 고난이도에서는 단순한 수치 보정으로 난이도를 높임
2. 후반부 게임의 지루함
- 초반의 탐험과 확장의 흥미진진함이 후반에는 사라짐
- 승리가 확정된 후에도 게임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음
- 턴당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져서 피로감 증가
3. 밸런싱 이슈
- 일부 문명이 특정 승리 조건에서 압도적으로 강함
- 지형 운에 따른 게임 결과의 편차가 너무 큼
- 멀티플레이에서는 게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림

사실상 게임은 끝났지만, 정복 승리를 하려면 다른 도시를 모두 점령해야만 한다… (출처: Reddit)
마무리: 내가 만들 게임에 적용하고 싶은 교훈들
문명6를 분석하면서 내가 게임 개발에 적용하고 싶은 원칙들을 정리해보면:
1. 의미 있는 선택의 중요성
플레이어의 모든 선택이 게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 정답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도록 각 선택지가 고유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
2. 테마와 메커니즘의 일치
게임의 주제와 배경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게임플레이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모든 요소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3. 복잡성의 점진적 도입
복잡한 시스템도 처음에는 간단하게 시작해서 점차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 플레이어가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4. 다층적 만족감
즉시 만족감부터 장기적 성취감까지, 다양한 시간 축에서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임들을 개발자 관점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좋은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고 분석하는 것이 좋은 게임을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결국 플레이어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문명6에서 배운 이런 설계 철학들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